17, 18세기의 유럽 음악을 바로크 음악이라고 한다. 바로크는 포르투갈어로 "찌그러진 진주"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17, 18세기 미술양식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비슷한 시기인 1600년경부터 1750년경의 음악도 바로크라고 말한다. 바로크 시대를 좀더 세분한다면 초기는 1580~1630년, 중기는 1630~1680년, 후기는 1680~1750년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시기는 역사적, 정치, 경제, 합리주의, 계몽주의의 여러 사회적 상황이 겹쳐서 궁정, 도시, 교회 등을 위주로 바로크 음악을 형성했다. 이 시대의 음악은 통주저음 기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바로크 음악의 시대를 '통주저음의 시대' 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바로크 음악은 ‘ 음과 음의 선율,리듬, 화성, 음정 등을 사용하여 모든 정서를 표현하는 데에 음악의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고 하는 미학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바로크 음악이라는 단어는 역사가들마다 표현법이 조금씩 다르지만, 대략 1600년부터 150년동안의 음악 양식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다. 바로크라는 단어는 건축에서 처음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실제로 1733년에 초연된 장 필리프 라모의 오페라 《Hippolyte et Aricie》에 대한 익명의 비평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1734년 "Mercure de France"라는 잡지에 기재된 비평에서 이 오페라의 일관성 없고 불협화음이 가득한 선율, 계속 바뀌는 조성과 박자, 매우 빠른 진행속도를 비판하는데에 바로크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음악가이자 철학가인 장자크 루소는 1768년에 쓴 자신의 책 《Encyclopédie》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Baroque music is that in which the harmony is confused, and loaded with modulations and dissonances. The singing is harsh and unnatural, the intonation difficult, and the movement limited. It appears that term comes from the word 'baroco' used by logicians.”
(바로크 음악이란 혼란스러운 화성, 변조와 불협화음으로 가득한 음악을 가리키는 단어다. 노래는 거슬리고 비정상적이며, 정확한 음정으로 부르기도 어렵다. 움직임도 단조롭다. 철학가들의 단어 'baroco'에서 나왔다.)
음악사학가들이 이 단어를 음악적 시대구분을 위해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19년이다. 여러 나라들의 학자들은 각각의 분석을 통해 바로크 음악의 시대구분을 제시했다. 하지만 바로크 음악이라는 용어가 동시다발적으로 제안되면서 시대구분에 대한 합의가 필요해졌다. 1960년이 되기까지 시기에 대한 합의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르네상스 음악, 고전주의 음악과의 확실한 차이를 구분하기 위해 바로크 음악이라는 용어가 결국에는 도입되어 지금까지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초기 바로크 음악
르네상스 말기에 인문학자, 시인, 음악가들은 카메라타라는 모임을 결성해 음악과 연극 등에 대해 여러 논의들을 했다. 이들은 고대 그리스의 음악극을 가장 뛰어난 예술로 보았고, 화성과 기악음악을 배척하며 키타라 반주에 독주가가 노래하는 모노디에 대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나갔다. 자코모 페리가 이러한 아이디어를 《Dafne》, 《L'Euridice》에서 선보임으로써 오페라와 바로크 음악의 시작를 알렸다.
피렌체에서 모노디가 발달할 때, 베네치아 악파에서는 기악곡이 발달한다. 리체르카레, 환상곡, 칸초네 등이 발달하였으며, 이후 독일에서 온 하인리히 쉬츠가 베네치아 악파의 음악을 배워 독일에 새로운 음악을 알린다.
또한 이 시대에는 화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역할을 하는 통주저음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이 통주저음을 보고 하프시코드, 파이프 오르간, 류트 연주자들이 즉흥적으로 보이싱을 하여 베이스라인을 만들었다. 카를로 제수알도 등의 작곡가들은 화성 진행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는데, 이에 따라 음악은 선법보다 조를 기준으로 하는 조성을 따르게 되었고, 이로써 시대의 격변이 발생한다. 조성감을 위해 작곡가들은 멜로디의 진행을 넘어 화성 진행을 신경쓰게 되었고, 조성을 더욱 분명하게 하기 위해 종지법 등의 작곡기술도 나타나게 되었다. 이와 같은 변화는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에서 절정을 맞이한다. 몬테베르디는 르네상스 시대의 폴리포니와 통주저음을 변용하여 프리마 프락티카와 세콘다 프락티카라는 장르를 각각 개척한다. 이러한 새로운 시도는 《L'Orfeo》와 《L'incoronazione di Poppea》에서 평단의 주목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한다. 몬테베르디가 바로크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화성 진행에 음악가들이 관심을 기울지면서 관용적인 주법과 화성의 사용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한다. 류트에서는 불규칙적인 방식으로 불협화음을 끼워넣는 주법이 등장하고, 이어 루이 쿠프랭과 장 르 롱 달랑베르는 쳄발로에 이러한 연주법을 도입시켰다. 이러한 영향은 이후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와 심지어는 프레데릭 쇼팽의 음악에서도 발견된다.
중기 바로크 음악
루이 14세로 대표되는 절대 왕정의 시대가 됨에 따라 부와 권력이 궁정으로 집중되기 시작한다. 이에 따라 자연스레 음악의 중심도 교회에서 궁정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큰 교회 회랑이 아닌 궁정의 방에서 연주되기에 적합한 실내악이 탄생했다.
장바티스트 륄리가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곡가이다. 륄리는 당시 프랑스 궁정에 고용된 유일한 작곡가로, 최초의 지휘자 중 한 명이다. 당시 기다란 지팡이로 지휘했다고 전해진다. 륄리는 현악을 중심으로 오케스트라를 구성했는데, 이 구성은 이후 이탈리아 오페라를 거쳐 현대에도 이어진다.
이탈리아에서는 1630년대에 칸타타, 오라토리오, 오페라라는 새로운 성악 형식이 등장하고, 가사와 일치하도록 멜로디와 화성을 배치하는 기법이 발명됨으로써 크게 호평을 받는다. 더욱 단순하고 짧은 멜로디들이 나타나고, 사라방드나 쿠랑트 등의 춤과 어우러지는 리듬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또, 화성이 단순하고 가벼워지고, 통주저음이 사용되던 베이스라인은 하나의 독립적인 성부로 기능하기 시작한다. 이처럼 화성의 사용이 단순해짐에 따라 레치타티보와 아리아가 독립적인 음악 형식으로 나타난다. 쟈코모 카리시미의 오라토리오, 프란체스코 카발리의 오페라가 유명하다.
또한 이 시기에 아르칸젤로 코렐리가 새로운 바이올린 연주기법과 교수법을 개발하고, 합주 협주곡 등 악기로만 구성된 음악들을 작곡하기 시작한다. 륄리의 활약이 궁정 내부에서만 이루어진 것에 비해, 코렐리는 작곡한 음악의 악보를 유럽 전역에 출판하고 연주회를 여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코렐리는 협주곡과 트리오 소나타에서 음량을 급격하게 전환하고 빠른 악장과 느린 악장을 번갈아 배치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는 그의 제자 안토니오 비발디에서 이어지며 이후 소나타 양식의 규범이 된다.
반면 독일에서는 디트리히 북스테후데가 교회 음악의 전통을 이어간다. 북스테후데는 교회에 부임하여 각종 전례에 따른 음악을 작곡하는 등 전통을 이어나간다. 교회 외에서는 아벤트무지크(Abendmusik)라는 이름의 연주회를 기획했는데, 여기서 발표된 종교극들을 오페라와 동류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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